달 밝은 주말에 철원으로 오랜만에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남들은 아무도 안 가는 날에 촬영을 가니 관측지가 조용하고 좋기는 한데 처음 가는 곳이라 살짝 긴장이 되더군요. 전부터 한 번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인데 달 밝은 날이라 그런지 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음의 고향 화천 조경철 천문대는 날이 따뜻해지면 일반인들과 별 보는 분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자리 잡기도 어렵고 복잡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더더욱이요. 아쉽지만 날이 다시 추워지는 겨울까지는 다른 관측지를 찾아다녀 볼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그 첫 번째로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주위가 좀 밝더군요. 농가도 꽤 있어서 가로등도 많고요. 제1 초소를 지난 상태라 계속 군인들이 순찰을 돌아서 전조등에 눈 뽕 제대로 여러 번 맞았습니다. 그래도 지대가 낮아서 산꼭대기에 비하면 바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월령 11일의 달이 떠 있어서 밤하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넓은 주차장에 이날은 저 혼자만 있어서 아주 적막하고 좋았습니다.
나무 뒤에 자리를 잡아서 바람도 좀 막아주고 주위의 광해도 줄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초저녁부터 자정까지는 M81 보데 은하를 H-Alpha로 촬영할 계획이었습니다. 열심히 장비를 설치하고 있자니 눈부신 ISS가 하늘을 가로지르네요. 오랜만에 촬영을 하려니 장비 설치부터가 시간이 걸립니다. 혼자 끙끙대며 설치 완료.
사진도 대낮처럼 환하게 나왔지만 실제로도 달 때문에 너무 밝아서 사실 촬영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촬영한 M81 H-Alpha는 별로 볼만한 게 없어서 RGB 촬영 때 합치는 것으로 하고 패쓰. 백조자리가 올라오면 주변 성운을 좀 촬영해 볼 생각으로 새벽 2시까지 주위도 둘러보고 일주 촬영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곳이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숙연해지더군요.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제가 이렇게 자유롭게 별도 보고 하는 것이죠. 멀리 언덕 위에 펄럭이는 거대한 태극기를 보며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새벽에 백조자리가 동쪽 언덕 위로 살짝 올라왔지만, 몇 장 찍지도 못했는데 군인들이 와서는 군 작전지역이라고 철수해 달라고 하도 졸라서 새벽 2시에 짐 싸서 돌아왔습니다.
다음에도 또 쫓겨날지 모르지만 또 가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달이 없을 때 가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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